- '슥슥슥' 거동 불편한 어르신 위한 이동목욕 봉사자로 팔 걷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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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미 기자가 어르신의 목욕을 돕고 있다. 사전 교육받고 실전에 나서서인지 능숙한 몸짓이 어르신의 기분을 좋게 했다. |
세수하고 머리감는 일. 매일 쉽게 해온 일이라,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허리를 삐끗한 후 문득, 자유롭게 씻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새삼 느꼈다. 건강할 땐 5분이면 거뜬히 하던 일인데…. 심한 허리 통증에 고개를 제대로 숙일 수 없어 얼굴을 빳빳이 세운 채 엉거주춤 씻어야 했다. 때문에 치료를 받는 동안 씻을 때마다 영락없이 물장난하는 다섯 살배기가 되어야 했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몸소 겪어서일까. 선천적·후천적인 장애로, 노화로, 혹은 일시적인 질병 등으로 자유롭게 씻을 수 없는 사람들의 고충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불편할까….’ 다행히도 이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고마운 손길이 있었다. ‘이동목욕’이 바로 그것. 이번 기자체험에서는 ‘뽀드득’소리가 날 정도로 개운하게 씻어주는 비누같은 이들과 동행하고 싶어졌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차비를 대신하고 서울공릉종합사회복지관 이동목욕차량에 훌쩍 올라탔다.
노인이 대상인 만큼 사전 교육은 필수
씻기는 일이 뭐 어려울까.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꼭 알아야 할 주의사항이 있단다. 때문에 처음 이동목욕을 하는 봉사자의 경우, 사전 교육을 받는다. 실전에 앞서 담당자인 강진영(27)간호사에게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
“이곳에서 목욕서비스를 받는 분은 40명 정도 돼요. 할머니 30분, 할아버지 10분. 이 중 와상환자가 20%, 장애인이 20%이고, 나머지는 거동은 하지만 독거노인이거나 혼자 목욕을 하기 어려운 분들이에요.”
듣기만 하는 것과 현장에서 교육받는 것은 천지차이. 그런 만큼 강 간호사는 이동목욕버스로 이동해서 하자고 한다.
보글보글 비누거품이 피어오르는 맑은 물에서 시원하게 씻으며 웃고있는 할아버지가 그려진 이동목욕차량. 보는 것만으로도 개운해 보인다. 차 문을 여니 그동안 구석구석 배인 비누냄새가 확 풍겨났다.
교육은 차량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부터 시작됐다. 안에는 커다란 욕조 하나와 목욕용품, 자주 고장이 난다는 보일러, 간이 의자가 놓여있었다. 마치 여느 가정집 욕실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허술해 보여도 무척 비싼 차예요. 이동목욕을 하려면 특수욕조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이 안돼 전부 수입해 와요. 8년 정도 사용하다 보니, 고장이 난 곳이 있어서 고치려고 알아봤는데, 부품이 없어서 못 고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차량자체를 교체하려고 공동모금회에 신청해놨는데, 올 말쯤에나 결정이 난다고 해요. 어르신들이 많이 불편해 하는데 꼭 됐으면 좋겠어요.”
차량을 쫙 둘러본 후에야 본격적인 교육에 들어갔다. 교육은 목욕 도중 안전과 대상자가 수치심 등의 불편을 가장 적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주의사항이 주골자였다.
“어르신이 오면 일단 혈압체크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목욕을 진행해요. 노인이다 보니 갑자기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해야해요. 심장에서 가장 먼 곳부터 씻어주면 돼요.”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그래도 꼼꼼히 새겼다.
“목욕은 보통 20분 정도가 적당해요. 그런데 교육받은 대로 20분 내외로 끝내는 봉사자가 있는 반면, 때가 잘 불을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두고 어르신과 얘기를 곁들여서 하는 사람도 있어요. 내일 함께 일할 봉사자는 후자인 편인데, 열심히 하셔서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휴∼!’ 처음이라 긴장이 됐는데, 순간 안심이 됐다.
이동목욕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진행된다. 현재 노원구에는 이동목욕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복지관이 이곳을 포함해 두 곳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목욕차량을 가진 두 곳에서 요일 별로 나누어 노원구 곳곳을 다니며 말그대로 ‘이동목욕’을 한다. 이곳에서는 화, 금요일만 복지관에서 하고, 월, 수, 목은 다른 곳으로 이동목욕을 나간다.
“내일은 복지관에서 하는 날이니까 9시30분까지 오세요. 목욕은 10시부터인데, 몇 가지 준비할 게 있거든요.”
목욕뿐 아니라 마음까지 나누는 ‘정’도 ‘보글보글’
다음 날 아침.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비가 온다고 목욕을 안 하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됐지만, 일단 약속시간까지 늦지 않게 갔다.
“비나 눈이 와도 당연히 하죠. 그런데 이때는 봉사자들이 직접 집까지 모시러 가요. 참! 그런데 오기로 한 자원봉사자가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못 온다고 연락이 왔어요.”
순간 이동목욕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당황했다. 그런데 다행히 이곳 복지관 치매주간보호센터에 실습 나온 봉사자가 있어 함께 하기로 했단다. 이동목욕을 하다보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그런데 문제는 자원봉사자가 많으면 다른 봉사자에게 부탁해도 되지만 현재는 인력이 없어, 당일 봉사자가 빠지면 그 날 목욕은 펑크난다는 것이다. 이번 달도 벌써 몇 차례 봉사자가 없어 이동목욕을 못했다.
“많이 힘든 건 아닌데, 다들 목욕봉사는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복지관도 도시락배달은 생계가 달린 것이니까 신경을 쓰는데, 목욕은 하면 좋지만 안 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보니 지원이 약한 편이에요. 하지만 하루만 안 씻으면 어때요? 불편하잖아요. 대상자들은 매일 씻는 것도 아니고 겨우 이동목욕을 통해 고작 2주나 한 달에 한 번 씻는데, 봉사자가 없어서 그것조차 못 하게 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목욕 시작까지는 20분 가량 남았다. 대상자가 오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전기를 연결하고, 물, 가스 등 당일 사용할 양이 충분한 지 점검했다. 자칫 목욕 중간에 물이나 가스가 떨어지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물이 모자라서 목욕받던 분이 제대로 못 헹군 적이 있어요. 또 중간에 가스가 떨어지면 급하게 부르기는 하지만, 올 때까지 당장은 따뜻한 물이 안 나오잖아요.”
대충 준비가 끝나자, 10시가 다 됐다. 오늘은 오전에 할머니 두 분, 오후에 할아버지 세 분이 목욕을 한단다. 좀 있으니, 치매주간보호센터에 실습 나온 봉사자들이 들어왔다. 이영희, 이미경 어머니. 불암중학교 학부모 봉사단인데, 좀더 전문적인 봉사를 위해 교육 받으러 왔단다. 서로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김용금(80)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오셨다. 할머니는 강 간호사를 보자마자 마냥 반가운지 손을 잡고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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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 목욕은 거동이 불편해 평소 혼자 씻기 어려운 노인이 주 대상자다. |
“뭘요. 할머니, 건강한 것 보니까 나도 좋기만 하고만. 혈압 먼저 체크할게요.”
2주에 한 번씩 이동목욕을 이용하는 김씨 할머니는 단골손님이다. 자식이 있지만 다들 멀리 떨어져 있고, 할아버지는 2년 전 먼저 떠나 지금은 혼자 지낸단다. 자주 이용하다 보니 이제 알아서 척척이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해 욕조에 들어갈 때는 부축이 필요했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 앉으니 시원한지, 할머니는 한참 몸을 불리고 싶단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몸을 불리는 사이 할머니와 봉사자 셋이 얘기꽃을 피웠다.
“할머니 혼자 지내시면 적적하지 않으세요?” “왜 안 그렇겠어. 틈만 나면 친구들을 불러내.”
“친구 분들이 많아서 할머니는 복 받으셨다. 식사는 잘 챙겨 드시죠?” “혼자 있다보니 귀찮아서 그냥 건너뛰기도 하고. 그래서 인지 요새 어지럼증이 생기네.”
그러자 이영희 봉사자가 펄쩍 뛴다. “그럴수록 잘 드셔야죠. 할머니, 입맛 없을 때는 멸치 갈아서 된장국 끓여 먹어봐. 나이 들수록 칼슘이 없어지는데 그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친정엄마하고 말하듯 이씨는 세심하게 챙겼다.
주거니 받거니 한참 수다를 떨었을까. 드디어 본격적으로 때를 밀었다. 열심히 하겠다고 결의를 다졌지만,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어제 교육받은 내용을 잘 암기해 뒀는데도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장에서 먼 쪽부터 해야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미 양 발은 이영희 씨와 이미경 씨가 맡고 있지 않은가. 눈치껏 등을 택했다. ‘박박 문질러야 시원하겠지’라는 생각에 힘차게 밀었다. 그러자 이미경 씨가 놀라서 손사레를 친다.
“노인들은 피부가 건조해서 너무 박박 문지르면 안돼.”
그는 또 한가지 주의점을 귀띔했다. 피부가 늘어져 겹쳐진 가슴 밑과 배 등은 일일이 펴가며 구석구석 닦아야 한다고. 그래야 염증이 안 생긴단다.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았을까. 봉사자 어머니들은 때만 문지르는 게 아니라 마사지와 지압까지 겸했다. 그런데도 손놀림이 나보다 훨씬 빨랐다. 괜히 옆에서 방해만 되는 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할 일이 생겼다. 머리를 감겨드려야 하는데,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손으로 막고 있으란다. 무슨 일이든 도움만 된다면야.
거의 끝나가자 김용금 할머니는 “아주 시원하게 잘 닦아주네. 그냥 대충대충 해. 힘드니까. 우리 늙은이들 누가 이런 대접 해주나. 미안하네. 고생했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다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게다가 앞치마가 비닐이다 보니 무척 덥다. 마치 땀복 같다. 그래도 지금은 가을바람이 불어 나은 편이란다. 여름엔 목욕 받는 분도 도움을 주는 사람도 모두 고생이다. 에어컨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강 간호사는 늘 봉사자에게 미안하다고.
거의 마무리 돼 가는데, 이한순(89)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한 번 경험을 하고 나니 요령이 생겼다. 이미 전에 분담했던 역할이 있다보니, 호흡도 척척 맞았다. 이한순 할머니와도 오래오래 얘기를 나누고 했지만, 금세 끝났다. 개운하다며 손 흔드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뿌듯함 마저 밀려왔다.
소외된 이들에게 오래오래 개운한 웃음 이어지길
오후에는 할아버지 목욕이다. 그러다 보니 딱히 내가 할 일은 없었다. 할아버지들을 모셔오고 모셔다 드리는 일 정도다. 씻기는 건 새마을 협의회 회원들이 담당했다.
박경관 할아버지를 모시고 와서는 밖에서 내내 기다렸다. 밖에서 있자니 오전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솨-솨’ 물소리가 버스 밖을 넘어섰다. 괜스레 오전에 했었던 일들이 되뇌어 졌다. 그러면서 아저씨들과 할아버지 사이에서는 어떤 얘기들이 오갈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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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을 마치고 나면 손톱발톱 손질까지 봉사자들이 해준다. 이한순 할머니는 지난번 목욕때 손톱깎이가 없어 못깎았다며 예쁘게 깎아달라고 부탁했다. |
15분쯤 지났을까. 쏴-하고 물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물이 버스 밑 하수구로 빠지자 비누냄새까지 확 밀려왔다. 마치 부뚜막에서 풍겨나는 구수한 밥 냄새처럼.
그렇게 5시까지 다섯 분이 목욕을 받으셨다. 다들 말끔해진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셨다. 작은 일이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도움을 주는 사람 틈바구니에서 지낸 하루가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강 간호사는 “쉬운 일이면서도 어려운 일이에요. 몸으로 하니까 많이 지치기도 하고요. 하지만 꾀죄죄한 모습으로 왔다가 말끔한 모습으로 돌아가시면 보람이지요. 그저 ‘목욕’일 뿐이지만, 소외되고 아픈 사람에게는 이것이 일상에 작은 웃음을 줘요”라고 말하며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내가 알지 못 하지만 곳곳에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동목욕도 마찬가지다. 등뒤에 소외된 이웃들에게 개운한 웃음을 전해주는 묵직한 비밀창고를 이고 다니는 공릉종합사회복지관 이동목욕차량.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비누향처럼 많은 봉사자들의 참여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의 얼굴에서도 오래오래 개운한 웃음이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김은미 사진/최경훈 기자
김은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