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 전하러 갔다가 행복 한가득 안고 와요”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은 개그맨이 봉사단체를 결성해 어르신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펼치고 있다. 1980년 동양방송(TBC) 공채 개그맨 2기 출신 김민(54)은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했던 그룹 딱따구리 리드싱어 가수 김호평(51), 트럼펫과 전자 오르간을 연주하는 강길성(52)과 늘푸른샘을 조직했다. 개그와 노래,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따뜻한 웃음으로 세상을 밝히는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개그맨 김민은 1980년 제2회 동양방송(TBC) 개그맨 콘테스트에 3위로 당선돼 방송 생활을 시작했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예능 특기자를 뽑아 공연하는 문선대 활동으로 기량을 선보였던 그는 제대 후 개그맨 공채에 지원했다.
“당시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응시를 했습니다. 김형곤, 장두석, 이성미, 이하원, 조정현 등이 제 동기입니다. 제 바로 윗기수가 서세원, 이홍렬 씨죠.”
그는 데뷔 후 2년 동안 동양방송(TBC)에서 라디오를 진행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노래하는 곳에’,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김민의 웃음 천국’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승승장구 했다. 그는 특히 박정희, 김종필, 김대중, 노태우, 정주영 등 30여 명의 목소리를 성대모사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 정책으로 TBC가 한국방송(KBS)에 흡수되자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송계를 떠나게 됐다.
“돈을 벌기 위해 밤무대 공연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4년에 전세보증금 4500만원을 사기 당했습니다. 전세계약서에 확정 일자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건물주가 돈을 빼간 겁니다. 그동안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의정부 법원에 전세보증금반환조정 신청을 내서 소송에 이겼지만 그 사람이 돈을 빼돌려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7년간 가슴앓이를 했더니 당뇨가 왔습니다.”
그는 당뇨 합병증으로 시각장애인이 됐다. 서울대학교의료원 안과에서는 그에게 시각장애1급 판정을 내렸다. 오른쪽 눈이 녹내장, 왼쪽 눈이 백내장이라는 것이다.
안과에 들렀다가 종묘공원으로 걸어가던 그는 비둘기처럼 삼삼오오 앉아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처연해 보여 사탕을 사서 나눠주며 성대모사를 했다. 그분들의 천진한 웃음은 그가 노인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김호평, 강길성 두 후배들에게 정식으로 제도권 안에 있는 양로원 어르신들을 찾아뵙자고 제안한 것이죠. 2001년부터 종로 청운양로원, 의정부 민락동 나눔의샘 양로원으로 봉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와 후배들이 결성한 늘푸른샘은 생명의 원천인 맑고 깨끗한 물이 되어 어르신들에게 기쁨으로 가득한 공연의 샘물을 대접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소외되고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드리고자 결성한 것이다. 트럼펫과 전자 오르간을 연주하는 강길성, 1982년 MBC 대학가요제 출신 그룹 딱따구리 리드싱어 김호평이 그와 뜻을 같이 했다.
“김호평 씨는 록, 로큰롤, 뉴웨이브, 펑키, 재즈,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게 없습니다. 특히 트로트를 잘 합니다. 어르신들께 노래를 많이 불러드리죠. 그는 이번에 윤시내의 열애를 작곡한 최종혁 씨에게 새로운 곡을 받았습니다. 지금 타이틀곡인 ‘시가 되어’라는 노래를 녹음 중입니다. 더 많은 공연을 해드리고 싶지만 각자의 일이 있기 때문에 저희는 한 달에 두 번 양로원을 찾아 갑니다.”
늘푸른샘이 찾아 가면 양로원의 외로운 어머님들은 아들 삼형제가 왔다며 반갑게 맞아준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공연 전부터 몸빼바지를 깨끗하게 세탁해 입고 다소곳하게 앉아 이들을 기다린다.
늘푸른샘은 종묘 국악정, 영보자애원, 현리 꽃동네 등에서도 공연을 펼치고 있다.
“저희는 봉사를 할 때 많은 것을 들고 가지 않습니다. 각자의 재능을 드리는 겁니다. 한강에는 물이 많고 젖소에게는 우유가 많은 것처럼 김호평 씨는 노래하는 재능을 드리고, 강길성 씨는 아름다운 음악을 드리는 겁니다. 저는 개그를 나누고 있지요. 삶에 활력을 주는 노래,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음악, 행복한 웃음이 모이면 멋진 공연이 됩니다.”
김민은 공연을 할 때마다 단팥빵, 과일, 사탕, 웨하스 등 어머님들이 좋아하는 소소한 먹을거리를 준비해 간다. 어르신들께 사탕을 나눠드리면 공연이 더 달콤해진다는 것. 어르신들이 세 아들을 위한다고 사탕을 안 드시고 손에 쥐어 줄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초기에는 공연을 위주로 봉사를 했지만 지금은 어르신들 손을 잡고, 목소리를 들으며 건강을 확인하는 등 정서적 교감을 나눕니다. 양로원에서 10년 넘게 봉사를 하다 보니 어르신들이 부모님 같습니다. 어머님들이 허리가 결리고 다리가 아프다고 아이처럼 엄살을 부리실 때는 등을 두드리며 안아드립니다.”
그는 ‘사랑합니다’, ‘용기내세요’, ‘어머니가 최고입니다’ 등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통해 어르신들에게 밝고 건강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는 스스로를 코미디언이 아닌, 개그맨으로 지칭하고 있다. 몸으로 웃기는 대신 말로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개그맨은 한 자리에 서서 천일 동안 이야기를 해도 스토리의 중복이 없어야 합니다. 군인은 전쟁을 잘 해야 되고, 학생은 공부를 잘 해야 되듯 개그맨은 무조건 웃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양로원 봉사를 하면서 어르신들 앞에서 10년 동안 개그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다양한 레퍼토리의 공연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김민은 개그맨이라는 직업에 관해서는 철저한 프로의식을 갖고 있다. 어르신들의 건강한 웃음을 위한 최고의 개그를 지향하기 위해서다. 특히 관객들과의 약속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르신들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합니다. 제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동생들이 저를 대신해 공연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소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1~2년만 하고 마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그는 그동안 10년 넘게 공연 봉사를 해왔다. 노인의 날에는 장충체육관을 임대해 동방예의지국 경로 효 큰 잔치를 열기도 했다. 늘푸른샘은 외로운 노인들을 초청해 빵과 음료를 나눠주고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모여 노래를 불렀다.
이제 김민은 건강과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남북한 합동 경로잔치를 개최하고 싶다. 남북 어르신 3000명을 모아 통일의 물꼬를 트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제목도 미리 정해놨습니다. 남북한 합동 경로잔치 한민족 대동제 얼쑤 아리랑입니다. 이 잔치는 일반 대중문화 공연을 20% 정도 넣고 나머지 80%는 팔도의 토속적인 놀이마당으로 꾸리고 싶습니다. 북청사자놀음, 송파산대놀이, 강원도 정선아리랑 같은 우리 민족의 얼이 깃든 공연을 남북이 함께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의 개인적인 계획은 코미디 책을 쓰는 것이다. 요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루에 한 두 페이지씩 책을 쓰고 있다. ‘김민의 웃음천국’이라는 책으로 상권, 하권으로 나눠 집필하고 있다. 책이 출간되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점자로 책을 만들어서 대한민국 시각장애인 연합회에 무료로 배포하고, 추후 이윤이 발생하면 또 다른 점자책을 만들려 한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몸이 살아있는 팔딱팔딱한 생선처럼 멀쩡할 때는 아무도 부르지 않더니 소금에 절인 죽은 생선이 되자 이곳저곳에서 저를 찾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살면서 가족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헌신했던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 봉사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작정이다. 효가 바로서야 가정의 질서가 회복된다고 생각하는 그는 어르신들을 경외심으로 받들면서 웃음과 감동을 나누려 한다. 그와 늘푸른샘이 어르신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바란다.

가수 김호평은 1982년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했던 그룹 딱따구리의 리드싱어 출신이다. 옥슨80과 함께 공연을 하는 등 음악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가 나눔의샘 봉사를 하게 된 것은 개그맨 김민의 제의를 받고 나서였다.
“따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선배님이 먼저 말씀을 하셨습니다. 개그와 노래, 연주가 합쳐지면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더욱 뜻 깊은 공연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는 봉사를 시작하고 난 후 어르신들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졌다. 어르신들이 부모님처럼 느껴진 것이다. 공연을 갔을 때 어르신들이 아들처럼 맞아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진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급인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자들이 아름다운 사회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르신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아픔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장수하면서 편하고 오래 사실 수 있는 그런 사회가 건설됐으면 합니다.”
재정적인 뒷받침이 안 돼 어르신들께 많은 것을 해드리지 못해 안타깝다는 가수 김호평. 그는 늘푸른샘 형제들과 함께 꾸준히 봉사를 이어갈 생각이다.
김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