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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어도 버스 못 타”… "현금 없는 버스"에 소외되는 노인들

기사승인 2023.03.03  09: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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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오늘부터 전체 25%로…108개 노선 1천876대 요금함 없애

"고향에서는 주로 자가용을 타고 다녀서 교통카드를 만들 생각을 못 했어요."

경북 경주시에 사는 이다애(34)씨는 지난달 27일 어린 자녀를 데리고 서울을 찾았다가 '현금 없는 버스'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적잖게 당황했다.

교통카드가 없는 이씨는 어떤 노선에서 현금을 받는지 구분하기 어려워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서울시는 기존 18개 노선·436대였던 '현금 없는 버스'를 1일부터 108개 노선·1천876대로 늘린다. 현금 없는 버스의 비중도 6%에서 25%로 대폭 높아졌다. 요금함으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줄이고 시민 편의성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또한,  시내버스 내 현금 이용률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서울시 버스정책팀이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버스의 현금 이용 승객 비율은 2010년 5%에서 2020년 0.8%까지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더 감소해 0.7%로 집계됐다. 서울 시내버스 현금 수입은 109억원에 불과했지만, 유지·관리비용은 20억원에 달했다. 낮은 이용률에 비해 현금 요금함 유지를 위한 관리 비용이 높다 보니 버스에서 현금함을 없애려는 것이다.

대다수 시민은 이미 카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어 지장이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시내버스 중 '현금 없는 버스'로 바뀔 7212·272·103번을 타고 총 1시간50분 동안 관찰해보니 현금을 낸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지난달 24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서 51명에게 물어본 결과로도 '현금을 내고 버스를 타겠다'는 응답자는 1명에 그쳤다.

하지만 현금함이 없어지면 불편을 겪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응답도 18명(35%)로 꽤 많은 편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카드 사용에 서툰 노인이나 외국인이 불편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70대 이상 노인의 최근 1개월내 현금 이용률은 98.8%였고, 신용카드 이용률은 57.3%에 불과했다.

체크·직불카드 이용률은 34.1%, 모바일 카드는 1.3%로 극히 낮다. 노인 절반 가까이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데다 휴대폰 지급수단으로 이를 대체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지혜연(52)씨는 최근 현금만 있는 노인이 고속버스터미널 키오스크(무인 정보 단말기)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도와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지씨는 "어르신이 탈 버스가 '현금 없는 버스'였다면 교통카드를 혼자 충전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윤선중(45)씨는 "계좌 이체를 어려워하는 어르신이 있다. 현금으로 살 수 있는 승차권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모(34)씨는 일본에 갔다가 교통카드 발급이 어려워 현금을 내고 버스를 탄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는 계좌 이체나 카드 충전이 어려운 영유아·어린이 자녀를 걱정한다.

서울 서초구 지역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 '현금 없는 버스'와 관련된 글이 올라오자 "카드가 없거나 카드를 놓고 간 학생은 버스도 못 타겠다", "아이들 버스카드 잔액을 잘 살펴야겠다", "다 카드를 쓸 수 있는 여건인 건 아닌데 선택권이 없어진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주로 버스로 이동하는 권모(32)씨는 "고령층이라도 현금을 내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며 "최근 은행에서 카드를 발급할 때 어르신에게는 교통카드 기능을 안내하고 추가하기를 권유한다"고 했다.

버스 기사들은 현금 요금함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대체로 현금 없는 버스를 환영했다.

용산공영차고지에서 만난 시내버스 기사 박모(59)씨는 "빙판길에 무거운 현금 요금함을 옮기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면서 "현금 요금함 자리에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는 게 이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내버스 기사 박모(47)씨도 "현금 모금함 모서리에 승객이 다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며 현금 요금함을 없애는 데 찬성한다고 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버스 현금 이용자 비율은 0.6%다. 현금 없는 버스에 교통카드 없이 타더라도 요금납부안내서를 받아 계좌 이체로 후납할 수도 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2021년 10월부터 현금 없는 버스를 시범 운행한 결과 현금(요금) 회수율은 99.6%였다"며 "현금 승차자의 무임승차 우려에 대해서는 추후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또 현금 없는 버스 시범 운행 결과 현금이용자(일반·청소년·노인·어린이) 중 노인 비중이 2022년 1월 19%에서 같은 해 11월 9%로 줄었다고 밝혔다.

버스요금은 현금 1천300원, 카드 1천200원이라는 점에서 고령층에서 카드 전환으로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서울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서울시는 ‘현금없는 버스’로 인한 불편·부작용이 없도록 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버스정류소 200m 반경 내에 편의점이나 가판대, 지하철 역사를 안내해, 교통카드를 구매하거나 충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버스정류장에 들어오는 버스가 ‘현금없는 버스’인지 알 수 있도록 번호 옆 LED로 승객이 알 수 있도록 하거나 버스 내부에 ‘현금없는 버스’를 알리는 음성을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방송하고 있다”면서 “‘현금없는 버스’가 지나다니는 정류소마다 큐알(QR)코드를 부착해 모바일 교통카드를 쓸 수 있도록 하거나 버스에 탄 카드 미소지 버스탑승객을 위해 계좌이체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대응은 카드와 휴대폰 사용에 미숙한 고령층의 불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QR이나 휴대폰을 이용한 계좌이체 활용 등은 노인들에게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현금없는 버스’가 ‘현금사용선택권’에 배치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현금사용선택권은 소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급결제수단 선택 시 현금을 배제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는 유럽을 중심으로 등장한 개념으로 영국 등 서구 선진국들이 2000년대 들어 ‘현금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노인 소외 등 부작용에 직면하면서 생겨난 개념이다.

특히 ‘현금없는 사회’의 선두주자였던 스웨덴은 2030년까지 ‘현금없는 사회’ 완전 이행을 목표로 했지만 부작용에 직면하며 은행 등에서 현금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을 비롯해 은행계좌가 없는 저소득층·난민들이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다. 현금자동인출기가 사라진 소도시에서는 기차나 버스를 타고 대도시까지 다녀와야 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현금없는 버스’ 노선 시범 운영이 곧 버스 이용시 현금 전면 폐지를 위한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고령층들이 버스 이용에서 지장이 없도록 정부 차원에서 해결책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전했다.

김희라 기자 heera29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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